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벌써 3년여 전 일인가? 어느 가을날 불현듯 하루하루 삶의 단편들을 어딘가에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인터넷에 나만의 카페를 연 것이다.

누구한테 일부러 알려 준 적은 없는데 인터넷 서핑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가입한 회원이 100여명이 넘는다. 덕분으로 카페에 들어가면 적적하지는 않지만, 그 공간에서만큼은 혼자서 누리고 싶은 기쁨들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 같아 좀 그럴 때도 있다.

하루를 열며, 하고 싶은 말 말, 교육자료, 내 마음의 오아詩스, 습작 글방 등 몇 개의 메뉴로 나누어진 카페 공간이 시간의 흐름과 함께 어느덧 이것저것 복잡하게 쌓여만 간다.

흔히 나이가 들수록 하나씩 버리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나는 어딘가에 자꾸만 뭔가를 남기려 하고 쌓아놓는 것에 연연해하는 건 아닌가 싶다.

함께 근무하는 선생님이 지난 8월 말에 출장을 다녀와서 책 한권을 건넸다. ‘15분 정리의 힘’ 그땐 별로 매력을 느끼지 못해 무심코 던져 놓았던 책이다.

그런데 어느 날 책표지에 ‘국내 1호 정리컨설턴트에게 제대로 배우는 유쾌한 정리법’이라는 문구에 자석처럼 끌렸다. 정리컨설턴트라? 학교에 기존의 장학지도 대신으로 하고 있는 컨설팅이나 컨설턴트라는 용어에는 제법 익숙해졌는데, 정리컨설턴트는 어째 낯설기만 했다.

그런데 정리가 하나의 자기 계발 수단으로 정착한 미국에서는 정리컨설턴트가 이미 보편화된 직업이라고 한다. U.S뉴스엔드월드리포트에서 선정한 미래 유망직종 20에 몇 번이나 선정될 만큼 꽤 알려져 있다고 한다.

정리컨설턴트는 정리 시스템과 방법을 소개함으로써 고객이 새로운 습관을 통해 평화롭고 질서 정연한 환경에서 살고 일할 수 있게 돕는 일을 한다. 평소 정리를 제법 잘한다고 자부하면서 살아왔다. 그런데 책을 읽어갈수록 업무를 보는 책상은 물론 주변을 자꾸만 둘러보게 되었다.

급기야는 책을 읽다 말고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려있는 파일이며 폴더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사무실 캐비넷이며 서랍을 모두 열어놓고 그동안 아까워서, 언젠가 유용하게 쓰일지 몰라 차곡차곡 고이 모셔 둔 책들과 물건들을 미련 없이 버렸다.

주말에는 옷장이며 집안 정리로 난장을 이루기도 했다. 한동안 그렇게 정리하고 나니 주변이 더 깔끔해지고 마음까지 홀가분해졌다. 진즉에 이렇게 정리하면서 비우고 사는 것인데 그랬다.

누구나 어린 시절 한 번쯤 ‘정리를 못한다’고 꾸중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어떻게 정리를 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배운 사람은 많지 않다.

정리는 배우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익숙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정리와 관련된 책을 읽고 보니 정리도 ‘배워야’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리를 잘하면 생활뿐만 아니라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다,라는 말에도 공감하게 되었다. “천재는 혼란을 지배한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명언처럼 정리란 자신의 삶과 공간의 혼란을 지배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삶의 혼란 속에 끌려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컨트롤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인생 속에는 해야 할 일, 구입한 물건, 처음 만나는 사람, 새로운 정보 등이 끊임없이 인풋(In Put)되고 있는데, 정리하지 않으면 원하는 아웃풋(Out Put)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불필요한 것들이 쌓이는 혼란 상태에 이르게 된다.

우리가 정리를 일상화하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될 것 같다. 요즘 나의 소망은 좀 더 단순하고 간결하게 사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현실에 얽매어 이것저것 복잡하고 정신없이 보냈지만, 이제는 보다 단순하고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답게 잘 정리된 삶을 살고 싶은 거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법정 스님의 ‘버리고 떠나기’에서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라는 말씀이 새삼 크게 울려온다.

사람이 변화하기 어려운 것 중의 하나가 새롭게 마음을 다잡고 실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생각만으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실행할 때 비로소 변화가 생긴다. 이제 하루 15분만 투자해서 주변을 정리해보자. 그러면 누구나 정리되고 간결한 삶을 살 수 있게 되지 않을까. 그러한 출발이 새로운 삶의 시작을 불러들일 것이다.

나는 오늘 당장 이것저것으로 복잡하게 쌓여만 가는 카페 안부터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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