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 충청남도 부여교육지원청 교육지원과장 신경희
장마철 간절했던 작달비가 요 몇 일간 요긴하게 내렸다. 잘못된 모든 것을 작달비에 씻고 새 희망을 노래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햇살이 오랜 만에 민낯으로 나왔다. 말매미 몇이 모처럼의 둥근 오후를 제재소 전기 톱날처럼 토막토막 켜 듯 울어 댄다. 한낮의 햇살은 아직 뜨겁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이 수상하다. 바람이 몸이 확실히 가벼워졌다. 하늘도 생각도 깊어졌다. 저기 가을이 온 거다.

요즘 대한민국 영화계 사상 최초 1,600만을 넘어선 '명량'이 화제다. 한국 박스오피스 사상 최다 관객 수를 수립하며 역대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차지한 것에 이어 한계 없는 흥행을 달리고 있다. 2,000만 돌파도 꿈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가족도 그 대열에 합류했다.

영화는 쉴 틈 없이 빠르게 전개되어 2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정도로 몰입도가 높았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겠지만 흥미진진했다. 영화를 본지 이주일이 넘었어도 명대사들은 아직 살아 귓가에 맴돌고 있다. 왕에게 보내는 상서를 쓰는 장면에서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의 배가 남아있사옵니다.”, 살기위해 싸움을 포기하자는 부하들에게“아직도 살고자하는 자들이 있다니 놀랍다”, 아들이 부하들의 두려움을 어떻게 용기로 바꿀 수 있는지 물어보는 장면에서는 “내가 죽어야겠지”, 긴 전투가 끝나고 옛 부하의 아들이 내민 토란을 받아먹는 장면에서는“먹을 수 있어 좋구나” 등이 그것이다. “먹을 수 있어 좋구나” 이 대사는 우리 집 막둥이가 식사 때 농담 삼아 읊조려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평소 자주 찾는 블로그에 잠깐 들렀다. 거기서 만난 어느 교장 선생님 이야기 글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명량’의 명대사를 새로이 접하게 됐다. 그는 남들이 거의 기억도 못할 대목에서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한다. 유아무개 장수의 아들이 이순신 장군에게 소개된다. 이순신 장군은 보관하고 있던 유아무개 장수의 유품을 아들에게 내밀며 말한다.“네 아비가 쓰던 물건이다. 받겠느냐?" 그는 이 '받겠느냐?' 는 말에 가슴이 찡 했다고 한다. “네 아비가 쓰던 물건이다. 가져가거라.” 이렇게 말하지 않고 그 아들에게조차 받겠는지 의사를 물은 거에 반했다는 거다.


오래전에 그 교장선생님은 학교 기숙사 화장실 리모델링 공사가 끝나갈 무렵 담당자들이 카탈로그를 들고 와서는 화장실 문짝을 어느 디자인으로 하면 좋은가 묻더란다. 그래서 교장은 여학생 기숙사 화장실을 쓸 일이 없으니 직접 사용할 여학생들이 고르도록 했다고 한다. 그냥 스쳐가는 대사에서도 큰 울림을 찾아내는 안목. Ask them. 그들에게 물어보라. 학생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눈높이를 인정하려는 참된 교육자의 모습이 무척 존경스럽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한 번 자문해 볼 일이다.

교황이 우리 곁에 머무신 동안 행복했다. 신자는 아니지만 뭔지 모르게 아늑했다. 교황의 손짓, 표정, 행보를 뉴스로 접할 때마다 마치 아기가 어머니 품에 안겨 험한 세상을 바라보듯 해맑고 온화했었다. 무엇보다 낮은 곳에서 몸소 섬기는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실천의 교훈을 가르쳐 주었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천진난만하던 그 분의 눈빛이 다시 그립다. 절뚝절뚝 여름이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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