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 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우리 학교 교사동은 외벽공사 중이다. 방학동안 어느 정도 마무리되길 기대했다.
그런데 오히려 개학을 하고 나니 발동이 걸려 지금에서야 한창 열을 내고 있다.
물론 공사를 하다보면 뜻하지 못한 사정들이 달라붙기 마련이다. 10여년 전에 손바닥 만한 집을 지을 때도 그랬다.

예상 기일대로 되는 것들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알게 모르게 애도 많이 태웠다.

개학을 며칠 앞두고 색을 선택하느라 힘들었다. 사업 예산이 부족해 세라폼 보드로 전체를 다 씌우지 못하고, 교사동 후면은 피치 못하게 페인트칠로 마감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전면의 세라폼 보드색 뿐만 아니라 페인트 색까지 골라야 하는 부담스러움이 뒤따랐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일일 수 있으나 학교 건물 전체의 색을 정한다는 것은 두고두고 신경 쓰이는 일임에 틀림이 없다.

내 집 같으면 부담 없이 취향대로 칠하고 붙이고. 설사 맘에 들지 않는다 해도 다시 바꾸면 그만인데, 학교는 그럴 수 없지 않은가. 튀지 않으면서도 세련되고, 누구에게나 편안하고 지루하지 않은 행복한 색을 쓴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몇이서 머리를 맞대고 한참을 살펴봐도 고르기가 참 쉽질 않았다. 거기다가 오래 전에 시공한 드라이비트 색이 강한 편이서 연하고 무던한 색을 선택한다 해도 본래 색이 드러나게 된다니 그게 더 어려웠다. 과정이야 어찌 됐든 일단 선택은 끝이 났다. 이제 과연 어떤 모습으로 현실화될지 그게 막연히 걱정스러울 뿐이다.

한번 쯤 도배지나 커튼 색을 골라본 사람은 안다. 직사각형의 작은 쪼가리나 도배지의 일부만을 보고 색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교감시절 교장실 리모델링이 끝나고 커튼의 모양이며 색을 고를 때, 그래도 색 좀 쓸 줄 안다고 판단하신 건지 교장선생님은 그걸 내게 정하라고 하셨다.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색상과 사진 자료만 보고 실패한 경험까지 총동원해 신중히 골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성품은 생각했던 모습과 달라서 황당하고 멋쩍었던 기억이 있다. 그 뒤로 선뜻 색을 쓴다는 것에 망설여지게 되었다.

누구나 자신이 선호하는 색깔이 있기 마련이다. 남녀의 색이 따로 없지만, 파랑은 일반적으로 남성의 색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파랑은 여성의 색이라고 한다. 빨강과는 대조적으로 침착하며 신비로운 색이다. 초록은 동방을 뜻하며 봄의 상징이자 사랑의 색이다.

가장 아늑한 색이라 눈이 피로할 때 초록을 보라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노랑은 안정과 번영을 의미하며 아시아에서는 가장 고귀하며 깨달은 자의 색으로 통한다. 금빛이 황제의 전유물이 된 것도 이런 연유라고 한다. 흰색은 고결하고 순수한 색으로 시작을 의미한다.

그러나 흰색은 순결한 만큼 다른 색에 물들기도 쉬워 까다로운 색이기도 하다. 검정은 우리 정서상 어둠에 해당하지만 모든 파장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색이다. '무'인 동시에 '전부'인 색으로 아프리카에서는 검정이 가장 아름다운 색이라 한다.

개인적으로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체질상으로는 오렌지나 노랑이 잘 맞고 몸에 에너지를 높여주는 색이라고 사상체질(四象體質) 전문가로부터 조언을 들은 적이 있다. 그 탓인지 실생활에서 가급적이면 유사 색의 옷을 입거나 장식품 사용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주변 환경에도 되도록이면 그런 색을 쓰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만약 색이 없다면 삶이 얼마나 단조로울까? 색이 담고 있는 의미나 그 특징을 알고 색을 쓴다면 우리네 삶이 보다 다채로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난 주말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을 읽었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지난 4월 13일 도쿄의 한 대형 서점에서 진풍경이 벌어졌다.

자정부터 판매가 시작되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새 소설을 구매하기 위한 독자들의 줄이 끝없이 길게 늘어선 것이다. 그리고 세 달 후, 그 풍경이 그대로 서울에서 재현됐다. 한국판 출간 7일 만에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운 것이다.

도대체 이 소설이 무슨 내용이 길래, 무라카미 하루키의 어떠한 매력이 이토록 충성스러운 독자들을 거느리게 된 것일까. 무지무지 궁금했다. 400여 쪽이 넘는 다소 두꺼운 책이었는데도,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를 따라 정신없이 순례를 하다 보니 어느새 그 여정이 끝나 있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 나의 색은 무엇인가? 내가 생각하는 나의 색깔,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는 나의 색은. 과연 나는 걸맞은 색을 쓰며 살고 있는 걸까?

사람은 누구라도 자신의 색이 있기 마련이다. 자신의 취향과 성격, 그 밖에 여러 가지의 요인들이 자신의 색깔을 만들어 간다. 성공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자신의 색깔을 찾는데 시간을 아낌없이 투자해 온 사람들이다.

그래서 개성 있는 모습만큼 자신만의 색채가 짙다. 우리가 하고 있는 교육도 그래야 한다. 제도와 정책에만 얽매여 가르치기보다 학생들 모습이 다 다르듯이 아이들 고유의 재능과 빛깔을 끄집어 내주고, 자신만의 색채를 맘껏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교육이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하다.

그래야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그러면 진정으로 행복한 학교, 행복교육이 자연스레 구현되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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