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신경희 교장

 
나는 길을 걸을 때면 새로 반 배정을 받은 담임교사처럼 출석을 부르듯 꽃과 나무와 풀들의 이름들을 소리 내어 부르는 습성이 있다. 소나무, 대나무, 봉숭아, 해바라기, 맨드라미, 채송화, 노루귀, 쇠별꽃, 쇠비름... 그러면 그 아이들도 대답을 한다. 꽃 이름, 풀이름들을 떠 올리다 보면 저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추켜올리듯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름 뿐 아니라 그 얼굴들의 생김새와 특징과 빛깔 그리고 개성이 느껴진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또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우연히 이름만 들어도 가슴 한복판이 잉잉하게 차오르고 따뜻해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에게는 수남이란 이름이 그렇다. 그 특별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있다. 그 중 한 사람은 풋풋하고 꿈 많던 여고시절 국어 선생님이시다. 그는 당시 시집까지 펴냈던 중견 시인이었다. 요즘 말로 훈남은 아니었지만 눈매가 아주 그윽하고 매우 이지적이었다. 2년 전이었던가. ‘써니’라는 영화를 봤다. 그 영화는 핑크 빛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아름다운 사랑에 대한 환상에 부풀어 있었던 여고 시절을 돌아보게 하는 기분 좋은 추억여행을 하게 해주었다.

시골 중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집 떠나 대전으로 유학(?)가서 적응하는 데는 힘들었다. 그 때 수남이라는 이름의 국어 선생님은 내게 큰 힘이었다.

어쩌다 국어 수업이 없는 날에도 어떻게든 선생님을 한번 마주치고자 도드라진 행동까지도 불사하곤 했다. 한번은 야간 자율학습 중이었는데, 퇴근 인사를 나누는 선생님 목소리가 복도 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어떻게든 뵙고 싶은 마음에 교실을 슬그머니 빠져 나와 신발장들이 열병하듯 서 있는 지하층으로 잽싸게 내려가 기다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한 참을 기다려도 나오시질 않았다. 환청이었나 보다. 포기한 채 허망한 심정으로 휘청휘청 계단을 오르는데, 뜻하지 않게 선생님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됐다. 그 때 그 순간 그대로 숨이 멎었었다. 꼼짝 못하고 서 있던 내 모습을 아무 말 없이 바라만 보시던 선생님의 그 눈빛이 아직도 선연하다.

청소 시간에도 선생님 목소리만 들리면 빠르게 매무새를 고치고는 눈 맞춤 한 번 해보고자 얼마나 애를 쓰곤 했던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열렬했었다. 그 덕분으로 국어공부를 열심히 했고, 성적도 꽤 괜찮았던 것 같다. 그렇게 치열하고 열렬했던 그 시절은 다 어디로 가 버린 걸까. 돌아보니 아련하다.

십여 년 전에 여고 졸업 20주년 행사에서 다시 만난 선생님은 조금 더 나이 든 모습이었지만 그윽하신 눈매는 여전하셨다.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들은 그 시절 그 시간에 모두가 멈춰 있는 듯 했다. 그런데 꿈 많고 찰랑찰랑 생기발랄하던 여고생들은 보이질 않고, 중년의 언덕에 아줌마들만이 옹기종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또 한 사람의 수남이는 여자다. 4년 전에 그녀를 처음 만났다. 학교에 부임해서 직원 명부를 살피다가 수남이라는 이름을 보는 순간 마음 채널이 여고시절로 고정돼 버렸다. 그녀는 동갑내기 조리원이었다.

지난해 추석에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다 가스가 폭발해 한쪽 다리에 큰 화상을 입은 것이다. 처음에는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상처가 심해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일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여 걱정을 참 많이 했었는데, 다행히도 상처들이 빠르게 회복되어 지금도 함께 일하고 있다.

하지만 예전의 다리 모습으로 돌라가려면 꽤나 시간이 필요한 듯싶다. 그녀는 순박하고 모두에게 마음 씀씀이가 따뜻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사람이다.

폭염이 하늘을 찌르던 8월의 어느 날. 집에 있어야 할 수남 여사가 느닷없이 부치미 몇 장과 직접 키웠다는 참외를 깎아 가지고 올라왔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그냥 생각나서 학교에 들렀다”며 까만 얼굴에 수줍은 미소를 날렸다.

지난 오월에는 완쾌되지도 않은 다리로 농사지었다며 민들레 잎을 한 박스나 가져왔다. “이 많은 것을 어떻게 다 먹느냐” 놀라니 “효소를 만들어 보라” 했다. 그 때 그 민들레 잎들은 지금도 항아리 속에서 효소로 변신 중이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힘들게 농사지은 것들을 아깝지 않게 나누며 베푸는 그녀. 수남 여사를 떠 올리면 그저 고맙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흔히 추억이란 흘러간 세월, 정지된 시간 속의 그리움이라고 한다. 삶이 외로울 때, 삶이 지치고 고달파질 때 자꾸 달려가고 싶은 곳이다.

어느 시인은 ‘추억이란 평생 꺼내 보고, 꺼내 보는 마음 속 일기장이다’라고 했다던가. 내겐 여고시절이 그렇다. 가족은 물론 머리에 떠오르는 이름들 하나하나가 인생의 꽃밭에서 만난 아주 소중한 인연들이다. 꽃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다.

처서(處暑)가 코앞인데도 연일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한 여름 햇살이 기울어가는 서쪽하늘을 바라보노라니 붉은 노을처럼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미소가 절로 흐르는 그 이름들을 하나하나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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