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혹한이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이상 한파의 원인이 지구 온난화라는 가설이 있다. 북극 상공 기온의 급상승으로 제트기류가 약해져 한기가 남하하여 유럽, 미주, 동아시아, 중동 북부, 북아프리카 일대까지 한파 세력이 점차 확산되어 추위가 갈수록 심해질 거라고 한다.

남반구는 폭염을 동반한 홍수로 몸살을 앓고 있고 북반구는 폭설과 한파가 내내 이어지는 등 평상시 겨울을 녹이게 하던 삼한 사온이라는 별칭이 추억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다. 그러나 때로 보너스처럼 포근한 주말이라도 찾아들면 긴장했던 근육들이 풀어지면서 어디로든 떠나고 싶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춥거나 덥거나를 가리지 않고 주말이나 방학이면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무조건 떠났던 기억이다. 물려줄 재산이 없는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함께 한 따뜻한 추억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쉬고만 싶은 주말에도 가까운 산을 함께 등반한다던지 영화를 감상하거나 명승지를 참 열심히도 찾아다녔다. 어느새 아이들은 커 버려 이젠 모두가 함께할 시간이 거의 없다. 더 많은 추억을 쌓지 못한 것이 그저 아쉽다. 함께 한 추억이 많은 것은 축복중의 축복이다.

곧 학교마다 겨울방학이 시작된다. 이번 겨울방학은 주5일제 수업의 영향으로 지난해 보다 짧아져 내년 1월에 방학하는 학교들도 꽤 많다. 학교는 방학 동안에도 다양하고 매력적인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성장을 도모하고 새로운 학년도를 준비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물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신의 진로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세상을 좀 더 멀리 보고 높이뛰기 위한 준비기간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부모에게는 여행이든 체험이든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만들 수 있는 좋은 시간이다. 좋은 추억! 그것은 몸속의 난로와 같다.

언제든지 되살아나 우리 몸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귀중한 연료를 모아두기 위해서는 많은 추억을 쌓아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무라카미 라디오》라는 에세이집에서 ‘풋풋한 시원(始原)의 풍경을 가슴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은 몸속의 난로에 불을 지피고 있는 것과 같아서 그다지 춥지 않게 늙어갈 수 있을 것이다.’ 라며 좋은 추억을 많이많이 쌓으라고 권하고 있다.

돈도 소중하고 일도 소중하지만 진심으로 함께 별을 바라보거나 추억을 만들 시기란 인생에서 극히 잠깐밖에 없는 것 같다. 일을 하느라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소홀히 하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이나 아이들은 저 만큼 가 있기 마련이다. 그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다. 칼 힐티는 ‘사랑은 사람을 현명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은 사랑하고 난후 상대방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 사랑을 배워가는 과정에서 우리는 몸속에 따뜻한 난로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바로 지금 심신(心身)에 불을 지펴줄 귀중한 연료를 모아야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세월이 좋아져 이것저것 빠르게 변화하는 문명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모두가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서로 부대끼며 살았어도 인정 많고 정겨웠던 그 시절이 한없이 그리워지는 까닭은 왜 일까? 동구 밖 개울가에서 고무신으로 고기 잡고, 벼 벤 논바닥에서 우렁이 잡던 얘기, 자치기 막대 치기하며 뛰어 놀던 옛 친구들 모습이 하나 둘 새록새록 생각날 때면 바깥 날씨가 아무리 매서워도 몸과 마음이 따뜻해진다.

어렵고 힘들었던 시절은 지금처럼 편안하지 않아 불편을 안겨 주기도 했지만 지나고 보니 삶의 고비고비 마디를 따뜻하고 슬기롭게 넘길 수 있는 처방전 없는 명약의 역할을 해 준 것 같다. 그런데 물질적으로 풍요롭고 어려움 없이 자라온 요즘 아이들이 우리만큼 컸을 때는 무슨 추억으로 살아갈까 걱정이 앞선다.

하루 종일 학교와 학원으로 전전하던 기억, 게임방, 컴퓨터 앞이 대부분인 휴식 시간이 그들에게 먼 훗날 무슨 추억으로 남겨질지. 어느새 한 가지를 더 가지려다 보면 한 가지를 손에서 놓아야하는 그런 나이로 접어들고 보니 작은 것, 여린 것들에게 자꾸만 눈길이 가고, 1% 더 행복해지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다. 지금 이 순간도 언젠가 그리워 할 추억의 실루엣이 될 것이다.

겨울방학은 빼곡히 채워 넣을 추억 쌓기 좋은 시간이다. 추억은 우리를 살게 하는 따뜻한 힘이 되고 또 가던 길을 멈추게도 한다.

준비운동 없이 마라톤에 임하면 부상을 얻기 쉽듯이 인생 마라톤에도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러한 준비의 시간은 낭비가 아니라 인생을 보다 멋지고 풍요롭게 해줄 것이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학교나 부모가 우리 아이들에게 인생마라톤 하기에 충분한 에너지를 비축해 줄 수 있는 아름답고 따뜻한 사랑의 추억 만들기를 해보자. 아무리 매서운 혹한 속에서도 우리 모두 몸속의 난로를 지피면 행복하고 따뜻한 겨울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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