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서면중학교 교장 신경희

 
한동안 맘만 먹으면 달려갈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는 그 곳에 갈 수 없게 되었지만 눈을
     
 
감고도 달릴 수 있었던 길. 사계절 내내 흔들림 없이 그 길을 지켜주던 나무가 문득 그립다.

지금은 곁가지들 다 날려버리고 오롯이 중심이 우뚝 선 겨울나목이 되어 깊은 침묵으로 서 있을 그들이 보고 싶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고 했던가. 더불어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존재감은 뒤늦은 상실감과 함께 다가온다. 빈자리에 남은 상실의 아픔을 메워 주는 건 역시 나무인 것 같다.

한번 뿌리내린 뒤로는 제 명을 다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게 나무의 운명인 까닭이다.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면 그와 함께했던 자리에 서 있는 나무를 찾아가 추억의 실마리를 풀어내기 마련이다.

떠났던 사람이 다시 돌아와 고향의 푸근함을 느끼게 되는 곳도 대체로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큰 나무이기 십상이다.

평온한 쉼의 물결로 겨울 나목들을 대하면 나무줄기들의 섬세한 선들을 만나게 된다. 한동안 무성한 잎들에 가려졌던 가지들이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 마치 화장 하지 않은 여인의 말간 얼굴을 하고 있다.
 
백년 천년 동네어귀를 지키고 있는 오래된 느티나목의 수만 가지가 하늘까지 포용한 그 모습은 한없이 너그럽고 숭고하기 그지없다. ‘오백년 여기 서 있는 동안 한번은 당신 샛별로 오고, 한번은 당신 소나기로 오고, 그때마다 가시는 길 바라보느라 이렇게 많은 가지를 뻗었답니다.’
 
최영철 시인의 ‘푸조 나무 사랑, 시가 저절로 떠오른다. 그런가하면 줄기가 부러져 나간 뒤 생긴 상처를 다른 줄기의 껍질이 부드럽게 덮어 감싸 안은 모습에서는 아픔의 세월을 거치면서 오랜 안간힘으로 버텨낸 뿌리 깊은 모성애가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말없이 의연하게 서 있는 겨울 나목들 앞에서는 조그마한 시련에도 비켜서고 싶어 하는 나의 연약함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제각기의 고운 빛깔로 영화를 자랑하던 나무들이 잎사귀 한 잎 없이 자신을 모두 비운 채 시방은 죽은 듯 서 있지만, 다가올 찬연한 새봄을 위해 열심히 수액을 빨아올리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그렇게 숙연하고 늠름할 수가 없다.

옛날 어른들께서 감나무에 감이 달려 있는 채로 봄을 맞이하면 그 해에는 감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을 종종 들은 적이 있다. 줄 것은 다 내어주는 것, 버릴 것을 다 버릴 줄 아는 것, 그래야 내일이 새롭고 또다시 풍요로울 수 있다는 인생의 지혜까지 그들은 우리에게 부록으로 건네주고 있는 것이다.

살다보면 이런저런 일들에 휩싸여 숨이 얕아질 때가 많다. 숨이 얕아지면 작은 일에도 당황하게 되고 두려운 마음에 허둥대게 된다.

그럴 때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깊은 호흡을 몇 번만 해도 안정이 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멈추면 마치 뒤처지는 것 같아 그저 달려가기 바쁜 세상에서 멈춰 서 있는 겨울나목의 서늘한 그 여유를 닮고 싶다.

겨울방학을 시작한지 벌써 2주가 지났다. 방학이라도 학교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돌아가느라 여전히 바빴다. 그 프로그램들이 이제야 모두 끝났으니 지금부터가 진짜 방학인 셈이다.

이 엄동설한에도 의연하게 서서 새봄을 위해 열심히 물을 길어 올리는 나목처럼 우리아이들도 이 겨울방학 동안 보다 의미 있고 내밀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그래야 봄이 되면 조금씩 제 비밀을 드러내는 나무들처럼 자신만의 끼와 개성을 발현하여 보다 멋지고 견고한 아름다운 꿈나무들로 성장해 갈 수 있을 테니까. 달력에는 겨울이 아직 많은 날 남아있지만 기적처럼 다가 올 찬란한 봄을 그들처럼 꿈꾸고 그렇게 맞이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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