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 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나이 들면서 언젠가부터 까닭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잦아졌다. 마음이 조금만 울컥해도 눈물이 핑 돌고, 날씨가 추워도 눈물이 흐른다. 나이 들면 다 그런 거라고들 하지만, 눈물은 정말 흘려야 할 때 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남자는 태어나서 딱 세 번만 울어야 한다’는 속담 같은 그물에 사로잡힐 필요야 없겠지만, 쓸데없이 눈물이 나는 것 또한 난감한 일이다. 마음은 이러 할진데, 장엄한 가을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바라보노라면 울컥해지고 눈시울에 눈물이 어리어진다. 이것 또한 병이다.

‘눈물’은 인간에게 주어진 신(神)의 은총이고, 비애의 극한에서 나오는 인간성의 마지막 표현이라고 한다. 어느 시인은 “이 지상(地上)에 오직 썩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 것은 신 앞에서 흘리는 눈물뿐일 것이다.” 라고 역설하기도 했다. 그런데, 눈물을 흘리면 왠지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 같아 꺼려지기도 한다. 그래서 울어야 할 상황에서도 부득부득 울지 않으려 입을 악 물고, 손에 힘을 꽉 주고 참아보려 애쓰며 강한 척 한 적도 있다. 생각해보면, 부질없는 짓이었다.

나는 술을 못한다. 그래서 술 잘하며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는 여성 리더들을 보면 참 부럽다. 젊은 날의 친정아버지 술 하시던 모습을 떠올려보면, 태생적으로는 잘 타고난 것 같긴 한데 영 젬병이다. 어쩌면 친정아버지, 남편이 너무나 술을 잘 마셔서 미리 질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들 그런다. 술 마시는 것도 노력해야 느는 거라고. 가끔 피할 수 없는 술자리가 생길라치면 녹음테이프를 돌리듯 하는 말이 있다. “악어 눈물만큼만 따라 달라고.” 어떤 연유에서 시작 됐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악어 눈물을 본 적도 없는데 말이다.

악어의 눈물은 거짓 눈물 또는 위선적인 행위를 일컬을 때 비유해서 쓰는 말이다. 이집트 나일강에 사는 악어는 사람을 보면 잡아먹고 난 뒤에, 그를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고대 서양전설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셰익스피어도 <햄릿> <오셀로>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 등 여러 작품에서도 이 전설을 인용하고 있다.

실제로도 악어는 먹이를 먹을 때 눈물을 흘리는데, 이는 슬퍼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눈물샘의 신경과 입을 움직이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삼키기 좋게 수분을 보충시켜 주기 위한 것이란다. 의학용어에도 얼굴신경 마비의 후유증으로 나타나는 '악어(의) 눈물 증후군(crocodile tears syndrome)'이 있다.
가슴에 눈물 한 모금 머금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가슴에 서러움 한웅큼 담지 않은 사람 어디 있겠는가. 한바탕 눈물을 쏟고 나면 가슴팍이 후련하고 시원해지는 그런 기분이 들지 않던가. 눈물을 흘린다는 건 결코 나약함이 아니다. 그건 바로 진솔한 감정들을 표현하는 행위이며 진솔한 언어다.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그 극단에 바로 눈물이 있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누군가에게 눈물은 숨통이고, 살아가는 힘이다.

눈물 골짜기가 말라버린 인생은 무미건조하고 죽은 인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눈물도 흘려봐야 혀끝이 말려드는 짠맛도 알고, 사랑도 해봐야 달콤한 눈물의 의미를 아는 것이 아닐까. 어려서부터 유독 눈물이 많았다. 가슴속의 아픔도 언성도 눈물로 맘껏 토해놓고 나면, 별거 아닌 것이 되고 평온해졌다. 누구에게나 삶에 지친 마음과 영혼을 쉬게 하는 방법이 있게 마련이다. 나는 원하던 원하지 않던, 눈물로 다 풀어낸다. 지는 계절 앞에서 또 찔끔거리며 눈 밑을 훔친다. 아, 눈물이란 통로가 있어 참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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