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 충남교육청 장학관 신경희
몇 차례 격하게 다녀 간 봄비 덕분으로 연두 빛은 더욱 진해졌다. 나무들이 제일 예쁠 때다.‘초등학교 입학식 날처럼 모두들 제 빛깔로 이름표 달고 서 있다, 라던 어느 시인의 표현이 새삼 왜 그리도 절묘한지. 요즘 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다 타버린 연탄재처럼 번 아웃된 가슴으로 젊음 만발한 연두 빛 에너지들이 흘러들어온다. 가슴 두근거림, 선홍빛 부끄러움, 야릇한 흥분 모두 다 돌아가고 싶은 양지의 딱 그 때다.

지난 주 좁은 마당에 쭈그려 앉아 어느새 일어선 풀들을 뽑고 있노라니 라일락 꽃향기가 스멀스멀 내 코를 점령해버렸다. 그도 모자란 듯 아예 내 몸 속으로 걸어 들어와 꽃이 피었다. 주말 내내 꽃은 지지 않고 지금껏 향기를 내품는다. 자연과 가까우면 어느새 나도 풍경이 된다.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보다 자연 속에 있는 것이 덜 외롭다. 땅을 밟고 잡초를 뽑으며 사는 이유다. 나이 들수록 자꾸만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더 단순하게 더 쓸쓸하게 삶의 양식을 바꾸며 살고 싶다. 때로는 벽에 그린 낙서처럼, 때로는 시 한 수 읊듯이, 이야기하듯이 대화하듯이 그냥 그렇게 둥글게 살고 싶어진다.

십여 년 전, 집을 지은 다음 해였던가. 뜰 끝자락에 라일락을 심었다. 좁은 마당에 이 나무 저 나무 욕심을 부리다 보니 좋아하는 꽃이지만, 라일락은 한그루 밖에 심질 못했다. 그래도 매년 이 맘 때쯤이면 보랏빛 수수꽃다리를 피워 향기로 온 마당을 채워준다. 아쉬운 건 원래 자갈밭이라서인지 십여 년이 지났건만 크게 자라지 못한 채 기력 없는 사람처럼 구부정하게 있어 안쓰럽다. 그 옆에서 함께 키를 맞춰 딱 그만큼의 높이로 서 있는 단감나무 역시 그렇다. 그녀도 가을이면 십 여 개의 단감을 선물 해 주곤 한다.

지난주 아산 지역 학교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좋은 학생들이 모여 있는 소위 명문학교였다. 여느 학교에서는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좋은 시설을 자랑한다. 교장실에 들어서니 어디선가 라일락향이 훅 하고 다가왔다. 주위를 살펴보니 투명한 유리병에 보랏빛 수수꽃다리가 한껏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향기를 선물한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그 때 이문세의 <가로수그늘아래서면> 노랫말이 말을 걸어왔다.‘라일락 꽃향기 맡으면 잊을 수 없는 기억에 햇살 가득 눈부신 슬픔안고 버스 창가에 기대 우네’노래를 들을 때마다 큰 사연도 없으매 그냥 눈물이 돈다.
이선희의 <라일락이 질 때> 노랫말도 마찬가지다.‘변해가는 너의 마음이 내게 날카로운 흔적을 남겨도 보고픈 건 미련이 남아서 일거야 돌아보진 마 내가 안타까워서 혹시라도 눈길 주진 마 생각하지도 마 또 다른 네 삶에서 나와 함께 했던 그 기억들을’세상이 온통 회색빛으로 우중충하던 어느 날, 반복재생으로 수없이 듣노라니 노랫말이 왜 그리도 구슬프고 아픈 미련이 파고드는 건지.

초여름의 길목에서 만나는 꽃이 라일락이다. 꽃말은 젊은 날의 추억이란다.‘가까운 사람보다 먼 바다가 그리울 때 있다. 바다보다 또 수평선 너머가 더 그리울 때 있지. 더 먼 것을 향한 그리움이 바로 상상력의 발화지점이지. 그러니 간절해야지. 간절하면 생의 사소한 것들 절로 경이로워지거든. 꽃 한 송이도 갈망으로 피는 것일 게야 아마.’오래 전 박범신의 <힐링>에서 읽은 구절이 다시 생각난다.

모란도 함께 피고 있다. 시인 김영랑은‘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라고 했다. 모란이 피어야 비로소 봄이 온 것이고, 모란이 지고나면 봄이 가버려, 시인은‘모란이 지고나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예순날 마냥 섭섭해 우옵네다’라고 했다. 여자가 장식을 하나씩 달아가는 것은 젊음을 하나씩 잃어가는 때문이라고 한다. 벌써 사월의 끝자락이다.‘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깊이 그리워지면’노랫말을 장식으로 달고 문 밖에서 서성이는 오월을 빛나게 맞이하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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