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부터 시작된 무더위가 유월 접어들면서 기승을 부리더니만 바람 불며 비가 내린다. 일기예보는 남쪽에선 벌써 장마 시작이라 한다. 아마도 지금 내리는 비는 여름 머리쯤을 적시는 비일 게다. 이왕지사 내리는 비를 타고 한없이 내려라. 버석거리던 세상이 추적추적 젖고, 풀풀 먼지 일던 마음이 촉촉이 가라앉을 때까지.잠시 일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서 있다. 바람에 실려 온 빗방울들이 하염없이 창문에 부딪히며 흐른다. 흑백영화처럼 번져오는 뻐근한 그리움. 이렇게 비오는 날엔 마음에 꼬깃꼬깃 접어둔 누군가 보고 싶어진다. 때로는 명
오늘도 어김없이 달렸다. 서해안 고속도로로 통근한지 일 년이 다 돼간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익숙해지기는커녕 늘 낯설고 두렵기만 하다. 커다란 트럭들의 행렬이 그렇고, 때론 빛의 속도로 내달리는 차들은 정말 무섭다. 십여 년, 전 대전으로 통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땐, 힘이 드는지, 무서운지도 모르고 다녔었다. 그런대로 운치란 놈도 있었다. 모시의 고장 한산을 거쳐 임천 강경으로 가는 구불구불하던 그 길. 속력은 낼 수 없었지만 사계절의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여유가 있었다.요즘
어느새 오월의 마지막 날이다. 이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이제 유월, 단오 지나고 하지 넘으면서 계속 더울 일만 남았는데 큰일이다. 무성해진 숲을 바라보며 화가 모네가 그토록 사랑했던, 그러나 결국 그를 실명(失明)의 고통에 빠뜨린 빛에 대해 생각한다. 생(生)이란 어쩌면 이토록 가혹한 건지. 가장 사랑하는 것이 왜 가장 큰 아픔을 주는지를 묻는다.피천득 시인은 의 끝자락에서‘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다. (…) 머문 듯 가는 것이 세월인 것을. 유월이 되면 원숙한 여인같이 녹음이
독서의 계절이라 하면 흔히 가을을 떠올리게 된다. 구지 독서를 하는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하는 지는 의문이다. 요즘처럼 나뭇잎들이 예쁜 계절에 눈부신 햇살이 은은하게 떨어지는 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는 상상만 해도 싱그럽다. 바쁜 일상에서 독서를 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시간 날 때마다 짬짬이 책을 읽는‘짬 독서’의 습관을 들이는 것도 괜찮다.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하루에 한 장이라도 읽는 습관을 들이면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지나치게 완독을 목표로 삼지 말아야 가능하다.조직 속에서 일하다보면 자아와 영혼을 대
몇 차례 격하게 다녀 간 봄비 덕분으로 연두 빛은 더욱 진해졌다. 나무들이 제일 예쁠 때다.‘초등학교 입학식 날처럼 모두들 제 빛깔로 이름표 달고 서 있다, 라던 어느 시인의 표현이 새삼 왜 그리도 절묘한지. 요즘 산을 바라보면 가슴이 울렁거린다. 다 타버린 연탄재처럼 번 아웃된 가슴으로 젊음 만발한 연두 빛 에너지들이 흘러들어온다. 가슴 두근거림, 선홍빛 부끄러움, 야릇한 흥분 모두 다 돌아가고 싶은 양지의 딱 그 때다.지난 주 좁은 마당에 쭈그려 앉아 어느새 일어선 풀들을 뽑고 있노라니 라일락 꽃향기가 스멀스멀 내 코를 점령해버
한 주간 해외 출장을 다녀오고 나니 세상이 온통 꽃 천지였다. 시절을 당긴 색색의 꽃들이 앞 다투어 피어나 온갖 향기를 뽐내고 있다. 덕분으로 두 눈이 한껏 호사를 누린다. 사월은 벚꽃과 복사꽃이 흐드러지고 목련과 유채꽃이 마음을 적신다. 젊은 베르테르를 생각하며 사월의 노래를 부른다.‘목련꽃 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질 읽노라. 구름 꽃 피는 언덕에서 피리를 부노라. 아아 멀리 떠나와 이름 없는 항구에서 배를 타노라. 돌아온 사월은 생명의 등불을 밝혀 든다. 빛나는 꿈의 계절아 눈물어린 무지개 계절아’봄바람이 귓불을 간지럽힌다.
봄은 봄이로소이다. 꽃샘추위를 청산한 봄빛 고운 삼월이다. 나무마다에 꽃망울이 터지고, 새순들이 움 솟는다. 둘러보고 가만히 들여다보면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곁에 있다. 주말에 봄맞이 마당 청소를 했다. 긁고 뽑고 다지고 반나절 이상 공을 들였지만 그렇게 크게 표 나진 않았다. 시골 단독에 살며 늘 느끼는 것이다. 아무리 치우고 정리해도 그저 그렇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덜 뽑고 덜 정리된 채로 사는 법을 나름 터득해 그냥 즐기고 있다.봄빛에 졸고 있는 담장 아래 작은 꽃씨를 감추고 물을 주었다. 잊은 듯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연
아동학대 여러분의 관심이 필요합니다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아동학대 사건으로 인해 경찰이 아동학대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하여 아동학대 전담경찰관 APO를 대규모 증원할 예정이다.학대전담경찰관 APO(Anti-Abuse Police Officer)는 최근 평택 아동학대 살인사건, 인천 맨발로 탈출한 11세 소녀학대사건, 부천 초등생 사건등 아동학대사건의 예방 및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리를 위하여 시행되고 있으며, 올해 350명 수준의 학대전담경찰관을 내년까지 1천여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현재 시행중인 학교전담경찰관 SPO(School
해마다 3월이 오면 새로 시작한다는 긴장과 누군가를 새로 맞는다는 설렘으로 살짝은 들뜬 마음이 된다. 대부분 1월에 새해 소원을 빌고 힘찬 출발을 다짐한다. 하지만 학교나 교육청은 3월이 그런 달이다. 학교마다 피돌기가 시작됐다. 여기저기 희망의 함성이 들려온다. 우리 교육청에서도 삼월의 첫 출근 날. 새로 부임한 직원인사도 있었고 월례 특강이 진행됐다.특강은‘왜 수업혁신인가’란 주제로 펼쳐졌다. 서울에서 내려 온 강사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유연하게 초점에 맞춰 곧잘 강의를 이어갔다. 시간이 꽉 차갈 무렵 강사는 영화‘역린’의 대사
입춘 지나고 봄비 내리는 우수를 건너 정월 대보름이 지나갔다. 정작 대보름엔 날이 흐려 보름달을 보지 못했다. 그저 마음속에 걸어두었는데, 다음날 둥그렇게 떠올랐다. 달빛이 참 좋았다. 온 세상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듯 온통 환했다. 둘 곳 없어 서성이던 맘 추스르며 소망도 빌었다. 월출하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그 얼굴 그 마음에도 만월이 떠올랐을 거다. 2월은 3월을 준비하는 설렘으로 가득한 달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학교의 2월이 그렇지가 못하다. 새 학년도를 기다리는 2월에 교사들은 새로운 학교생활을 준비하며 오히려
구정을 보내고 진짜 새해를 맞이한 지 열흘을 넘어서고 있다. 여전히 새벽부터 정신없이 달린다. 가끔 내가 왜 달리는지도 모른 채 그냥 달린다. 하루하루 숨 가쁜 일상, 잠시라도 공백이 생기면 불안하고 초조하다. 뭔가 자꾸 더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시달리며 한 번씩 돌아본다.‘무엇을 위해 달리는가,‘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가’그런 물음표를 던지면서.며칠 전 책을 읽다가 만난 새 책을 읽고 있다. 책은 또 다른 책을 읽게 하는 힘이 있다. 최근 큰 인기를 끌고 있는 김정운의 가 그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가슴속으로 겨울나무들이 걸어 들어왔다. 자연스레 겨울 숲의 깊이와 운치를 알게 됐다. 메마른 잎조차 벗은 나무 가지가 시린 하늘을 감싸 안은 모습은 가히 치명적인 아름다움이다. 겨울나무는 나조차 가릴 수 없는 빈한한 덧없음에 삶의 시야까지 열어준다. 겨울나무가 틔워 주는 시야는 삶의 진정함은 가졌을 때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놓았을 때라는 걸 보여준다. 애착하고 집착하는 그 모든 것들은 어느 날 생각해 보면 다만 다 흘러갈 뿐이다. 버리려 해서 버려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려 해서 갖게 되는 것도 아님을 세월 속에
올겨울 날씨는 유난히 포근하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레 강력한 한파가 찾아 들었다. 원인은‘우랄블로킹’현상 때문이란다. 유럽과 아시아를 나누는 우랄산맥 동쪽에 커다란 고기압이 생기면서 북극 주변을 돌던 제트기류의 흐름이 막혀 심하게 굽이치게 되어 만들어진 탓이다. 대서양과 태평양에도 이런 블로킹이 만들어져 유럽과 미국 동부지역에도 한파가 몰아치고 있단다. 대한 추위도 그 몫을 톡톡히 했다.우리 동네 서해안 지역은 20센티가 넘는 눈까지 내렸다. 바람도 칼끝처럼 날카롭다. 무엇보다 출퇴근이 어렵다. 요 며칠 차량이 뜸한 이른 새벽에
붉은 원숭이해 신정 연휴를 보내고 첫 출근을 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순으로 접어들었다. 진심과 형식이 적절히 버무려진 새해 인사를 나누자마자 해외출장이 잡혀 있어 다녀왔다. 시차 적응도 되기 전에 떠나와 출근을 한 탓인지 오후가 되니 동공은 있는 대로 풀리고 머릿속은 멍하니 다시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은 희망의 백지.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 될 것 같던 새해 첫 날. 그 다짐들이 무색해져 간다. 새로 받은 백지 위에 무엇부터 적을 것인지. 무엇을 향해 달릴 것인지. 무엇을 얻기 위해 땀을 흘릴 것인지.
을미년을 하루 남겨두고 있다. 다사다난(多事多難)이란 말은 해마다 거른 적 없다. 올해도 아슬아슬했다. 상처와 좌절도 컸다. 세월이 흘러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한 해를 보내는 회한이 그렇다. 달뜬 기분으로 시작했던 한해가 다 갔다. 대체 그 많은 날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후회와 반성이 물결을 이룬다. 돌아보면 무언가 안 될 때도 참 많았다. 불안과 희망의 도돌이표로 이어지는 무심한 시간들. 그 흐름 속에서 조금 불행하거나 조금 행복하거나를 반복해왔던 것 같다. 이제 기억과 망각의 경계선에 서서 남기고, 버릴 것들은 골라내
30대 후반에 부부행복학교를 다닌 적이 있다. 매주 목요일에 몇 쌍의 부부가 만나 저녁식사를 하고 토론을 했다. 부부생활을 하소연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토론을 하다보면 새벽이 되기 일쑤였다. 지정해주는 책을 함께 읽고 독후감을 써서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다. 그렇게 6개월여가 지나고 1박 2일 최종 워크숍이 있었다. 장소는 깊은 산속 한적한 기도원이었다. 무엇에 쓰일지 궁금한 도구들도 눈에 띄었다. 다듬이돌, 방망이, 군용 담요 등등. 어둠이 이슥해지면서 그 도구들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당시 50대 중년 부부의 상황이 매우 인상적이었
한차례 눈보라가 불어왔다 물러갔다. 뭔가가 사라진 것 같아 주머니를 더듬었다. 미련이 많은 사람은 어떤 계절을 남보다 조금 더 오래 산다고 한다. 12월이다. 걸어 온 길을 떠올려 본다. 피천득은 수필 에서 '새색시가 김장 삼십 번만 담그면 할머니가 되는 인생'이라고 표현했다. 인생은 정답이 없지만 고민하면서 치열하게 나아가는 것이다. 얼굴에 잔주름 늘어나고 흰 머리카락이 더 많이 섞였지만 무사히 여기까지 왔다. 가끔 한숨을 쉬면서도 묵묵히 걸어왔다.사람들은 모두가 자신의 길을 향해 걸어간다. 그 길은 자신이 좋아
첫눈이 함박눈으로 왔다. 그날은 외부행사로 부안에서 내소사를 거쳐 올라오던 길이었다. 마음 준비도 안됐는데 순식간에 은빛세상이 돼버렸다. 첫눈이 그렇게 와서는 안 되는데. 가을이 미처 떠나기도 전에 겨울을 알리는 고지서처럼 첫눈은 그렇게 배달되었다. 그 날은 민주화의 큰 산이자 개혁정치의 큰 강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배웅길이기도 했다. 버스 안 모니터에서는 영결식 중계방송이 음악처럼 흘렀다. 알싸하던 가을은 그렇게 흔적 없이 사라졌다.거북이걸음 운전으로 어렵사리 퇴근을 했다. 약속은 없었지만 어디론가 가야 할 곳이 있어야
4대 사회악 척결은 현 정부의 핵심 국정 과제 중 하나다.경찰 또한 근절을 위해 대대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4대악으로 불리는 가정폭력,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 그 중 재발률이 높은 것이 가정폭력이다.여성의 인권이 향상되고 가정폭력의 방지를 위한 법들이 제정, 보완되고 있지만 가정폭력은 여전히 우리 사회와 가정을 좀먹고 있다.가정폭력이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수위도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여전히 개인과 가정의 문제로 치부되고 있고, 주변시선을 의식하는 등 참고 지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그렇기에 신고율이 높지가 않다
11월 13일에 금요일. 많은 일들이 잡혀 있었다. 서울출장, 수업혁신을 위한 배움 수업축제, 글을 씁네 하며 발을 들여 놓은 서림문학회 문학의 밤, 전시회, 지인의 자혼 피로연 등. 일 년에 딱 한 번 있는, 아니 누군가에겐 평생에 한 번인 행사도 있었다. 어느 것을 택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국 공직자로서 1박 2일 출장을 갈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른 행사들은 접어야 했다. 안 좋은 일이 생긴다는 13일의 금요일. 공교롭게도 그 날은 최악의 동시다발 파리 테러가 발생했다. 비는 종일토록 주룩주룩 내렸다.가을비 한 번에 내복 한